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작은 도산

제4호2026년 4월

김형순 — 아메리칸 드림의 원조, 넥타린의 아버지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886~1977)

🍊 김형순(金衡珣, Harry S. Kim, 1886~1977)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대한민국 정부, 2011년)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털 없는 복숭아 ’넥타린’. 이 과일이 100년 전, 바로 우리 한인 선구자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는가.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가 2026년 4월 ’이달의 작은 도산’으로 선정한 인물은 캘리포니아 농업의 전설이자 평생을 조국의 독립에 바친 김형순 선생이다.

첫 이민선 통역관에서 백만장자로

188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난 김형순 선생은 어린 시절 인천으로 옮겨가 미국인 선교사 존스 목사로부터 영어와 서양 학문을 익혔다. 배재학당을 졸업한 뒤 인천세관 직원으로 일하다, 수민원 통역관 시험에 합격해 1903년 한국 최초의 이민선에 통역관으로 승선하며 미국 땅을 처음 밟았다. 1909년 귀국해 이화학당 출신의 한덕세 여사와 결혼한 후, 나라 잃은 망국의 한을 품고 1913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왔다.

부부가 함께 캘리포니아 리들리에 정착해 묘목회사를 일으킨 선생은, 부인 한덕세 여사의 주선으로 이화학당 시절 은사였던 김호 선생을 동업자로 맞아 1921년 ’김형제상회(Kim Brothers Co.)’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원예 전문가 앤더슨(Fred Anderson)이 개발한 넥타린 특허품의 묘목 전매권을 획득해 신품종 18종을 미국 전역에 보급했고, 미연방 농무성으로부터 ’넥타린 왕(King of Nectarine)’ 칭호를 수여받았다. 미주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인 무실역행(務實力行), 즉 거짓 없는 성실함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한 결과였다.

번 돈보다 더 크게 나눈 삶

김형순 선생의 진면목은 번 돈을 쓰는 방식에 있었다. 선생은 처음에는 이승만 박사의 재정 후원자로 독립운동을 도왔으나, 이후 동업자 김호 선생과 함께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자금을 꾸준히 지원했다. 1938년 로스앤젤레스 제퍼슨가에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관을 건립할 때도 거액을 쾌척했다. 1941년에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재정위원장을 맡아 사위 김용중의 워싱턴 DC 외교 활동을 적극 뒷받침했다.

나눔은 광복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전쟁고아들을 위한 육아원을 세우고, 이화여대·건국대 등에 꾸준히 장학금을 보냈다. 김호 선생과 함께 한인재단을 설립해 유학생들을 지원했으며, 오늘날 로스앤젤레스 한인회관의 전신인 한인센터 건립에도 기금을 보탰다. 평생 사업으로 번 돈을 부인 한덕세 여사와 함께 독립운동과 동포 사회에 아낌없이 환원한 것이다.

도산의 제자, 작은 도산으로 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세운 흥사단의 열성 단원이었던 김형순 선생은 무실역행의 정신을 평생 삶으로 실천했다. 1977년 1월 25일, 92세를 일기로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했으며, 장례는 대한인국민회장(國民會葬)으로 엄수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며 그 불굴의 생애를 기렸다.

100년 전, 낯선 땅에서 씨앗 하나를 심어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조국과 동포에게 돌려준 사람. 우리가 오늘 마트에서 넥타린을 집어 들 때, 그 과일 속에 담긴 한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기억하길 바란다.

"도산의 정신을 잇고, 미주 한인의 미래를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