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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도산 2월호 / 02. 2026

  • 3월 2일
  • 7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5일

[기획 1] 십자가와 태극기를 품은 영원한 청년, 도산 안창호


미주 한인 사회와 이민 교회의 역사를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이름, 도산 안창호. 그러나 오늘날 미주 한인 동포들과 수많은 한인교회 성도들 중 도산이 '얼마나 뜨겁고 실천적인 기독교인이었는지' 아는 이는 드물다. 심지어 백범 김구 선생이 젊은 시절 동학에 가담했던 사실과 혼동하여, 도산을 동학교도나 유교적 학자로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금 우리가 매주 예배를 드리는 미주 한인교회의 시작점에는 도산 안창호의 눈물 어린 기도와 땀방울이 배어 있다. <월간도산>은 미주 한인교회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했던 '신앙의 선배이자 교회 개척자'로서의 도산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

"우리 2천만 동포가 다 '신약성경' 한 권씩을 손에 들고 그 진리를 깨달아 실천한다면, 우리 민족은 반드시 구원을 얻으리라."

1. 동학교도? 아니, '한국의 예레미야'

도산 안창호는 1894년 청일전쟁으로 짓밟힌 평양을 보며 구국의 길을 찾기 위해 상경했다. 그가 당도한 곳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하고 밀러(F.S. Miller, 민노아) 선교사가 운영하던 구세학당(현 경신학교, 연세대학교 효시)이었다. 도산은 이곳에서 서양 학문과 함께 기독교를 접하고 세례를 받았으며, 학당의 조교로 일할 만큼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다.

밀러 선교사는 선교 본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이 소년의 열정과 활력 덕분에 학당이 새로운 단체가 된 것 같다"며 도산의 정직함과 리더십을 극찬했다. 조국을 잃은 슬픔 속에서 민족의 갈 길을 제시하려 했던 그를 두고, 당시의 시인 김동환은 구약성경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에 비유하기도 했다.


2. 장인까지 전도한 복음 전도자, 그리고 기도의 동역자 이혜련

(20대 시절의 올린 도산 안창호와 이혜련 여사.)


도산은 신앙을 받아들인 후 고향으로 내려가 점진학교를 세우고 직접 교회를 개척하며 전도에 힘썼다. 특히 꼬장꼬장한 서당 훈장이었던 스승이자 장인 이석관을 끈질기게 설득해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아내가 될 이혜련이 서울 정신여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울 수 있도록 이끌었다.

1902년 제중원(현 세브란스 병원)에서 밀러 선교사의 주례로 결혼한 도산과 이혜련 여사는 곧장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이혜련 여사 역시 평생을 교회에 헌신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도산이 독립운동을 위해 전 세계를 떠도는 동안, 그녀는 백인 가정의 가사 도우미와 삯바느질로 5남매를 키워내며 한인 부인단체를 조직해 독립자금을 모았다. 부부의 굳건한 신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가시밭길이었다.


3. 미주 한인교회의 '진정한 개척자'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 안에 걸려있는 도산 안창호 사진,1903년 교회 창립자라고 쓰여 있다.)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 안에 걸려있는 도산 안창호 사진,1903년 교회 창립자라고 쓰여 있다.)

미주 한인들에게 도산은 '교회 설립자'였다. 1903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도산은 동포들이 인삼 구역을 놓고 상투를 잡고 싸우는 처참한 현실을 목격한다. 그는 즉시 내 공부를 포기하고 동포들의 생활 개선에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친목회'를 조직하고 교포 9명과 함께 가정 예배를 드린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미주 본토 최초의 한인 교회인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의 모태가 되었다.

이후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로 이주한 도산은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는 한인 노동자들을 위해 현지 장로교회(Calvary Presbyterian)와 관계를 맺고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주선했다. "오렌지 하나를 따더라도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가르침은 다름 아닌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골 3:23)는 성경적 직업 소명설의 철저한 실천이었다. 도산의 지도 아래 한인들은 술과 도박을 끊고 주일마다 예배당에 모였으며, 미국인들은 "당신네 나라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왔소"라며 놀라워했다.

(100년 전, 파차파 캠프의 한인장로교회 성도들)
(100년 전, 파차파 캠프의 한인장로교회 성도들)

4. 무실역행(務實力行)과 현실에 참여하는 신앙

(1916년 흥사단 연례대회 장면. 가운데 도산 안창호 선생이 보이며 사진 오른쪽이 도산의 부인 이혜련 여사이다. 건물 중앙에 흥사단의 영어 약자인 YKA (Young Korean Academy)와 건물 오른쪽 한문으로 興士團이 새겨져 있다.)
(1916년 흥사단 연례대회 장면. 가운데 도산 안창호 선생이 보이며 사진 오른쪽이 도산의 부인 이혜련 여사이다. 건물 중앙에 흥사단의 영어 약자인 YKA (Young Korean Academy)와 건물 오른쪽 한문으로 興士團이 새겨져 있다.)

도산이 1913년 창립한 '흥사단'의 입단식이나 서약례 등은 기독교의 세례 문답과 의식을 본뜬 것이었다. 그는 "우리 2천만 동포가 모두 손에 신약전서를 한 권씩 가지는 날에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외치며, 기독교적 가치관이 썩어가는 민족을 개조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가 평생 강조한 '무실역행(거짓을 버리고 참되기를 힘쓰자)' 또한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속이지 않으려는 청교도적 윤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도산은 내세 지향적이고 정교분리만을 내세우며 "예수만 믿으면 천당 간다"고 가르치던 일부 보수적인 선교사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도산에게 신앙이란 교회 담장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억압받는 민족의 고통 속으로 뛰어들어 현실을 변화시키는 '행동하는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5. 미주 한인교회가 응답해야 할 시간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에 방문한 아이들)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에 방문한 아이들)

도산은 한평생 기독교 신앙을 가슴에 품고 조국을 사랑한 실천적 그리스도인이었다. 파벌 싸움과 반목이 심했던 독립운동 진영에서도 "너도 사랑을 공부하고 나도 사랑을 공부하자"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무저항주의적 실천으로 호소했다.

오늘날 우리 미주 한인교회들은 어떠한가? 교회 안의 분열과 현실 사회를 향한 무관심 속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 미주 한인교회의 역사는 도산 안창호 부부의 눈물 어린 땀과 기도, 그리고 헌신 위에 세워졌다.

이제 미주 한인교회는 도산을 교과서 속 독립운동가로만 남겨둘 것이 아니라, '우리 이민 교회의 개척자이자 신앙의 대선배'로 재발견해야 한다. 그가 꿈꾸었던 '거짓 없이 참되게 행하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신앙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 그것이 미주 한인교회들이 도산에게 진 진정한 빚을 갚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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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_안창호를_움직인_진짜_힘은_기독교였다

[기획 2] 총칼보다 강했던 그의 펜 끝… '천재 작사가' 도산 안창호를 아십니까?



근엄한 양복 차림, 꼿꼿한 자세. 우리가 기억하는 도산 안창호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교육자, 그리고 치열했던 독립운동가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 당대 최고 수준의 감수성을 지닌 '예술가'이자 '천재 대중음악 작사가'의 혼이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국권 상실의 암흑기, 말과 글이 통제당하던 100년 전 한반도에는 민중의 피 끓는 저항과 눈물을 담은 약 2,000여 곡의 '애국창가'가 존재했다. 놀라운 것은, 당시 한반도는 물론 만주와 미주 등 해외 동포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가장 크게 유행했던 히트곡들의 대부분이 바로 도산 안창호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김수현 교수의 고증에 따르면 그 수가 무려 50여 곡에 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도산이 쓴 노랫말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 한마디로 철학적 깊이와 대중적 감각이 완벽하게 결합된 마스터피스였다.

그의 탁월함은 단순히 문학성을 넘어 음악적 장르를 완벽히 이해했다는 데서 빛을 발한다. 도산은 우리 전통 민요의 '메기고 받는' 형식을 차용하여 대중의 '떼창'을 유도했고, 서양의 찬송가나 친숙한 스코틀랜드 민요 선율에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가사를 절묘하게 얹어 민중을 거대한 감정으로 묶어냈다.


운명적 만남, 영혼의 파트너 작곡가 '이상준

이러한 천재 작사가 도산의 곁에는 그의 노랫말에 날개를 달아준 영혼의 파트너, 작곡가 이상준(1884~1948)이 있었다. 피어선 성경 학원에서 아코디언을 배우며 음악에 눈을 뜬 이상준은 본래 독일 유학을 꿈꾸던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기차 안에서 우연히 도산 안창호를 만나게 된 그 날, 이상준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뀐다. 도산의 뜨거운 민족 계몽 의지에 깊이 감화된 그는 유학의 꿈을 미련 없이 접고, 도산과 함께 음악으로 민족의 얼을 깨우는 길을 택했다. 1910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망명길에 오르는 도산의 뼈저린 아픔과 비장한 쾌감을 담은 명곡 <거국행(거국가)>의 아름다운 선율 역시 바로 이 이상준의 손끝에서 탄생한 것이다.


대한민국 <애국가> 작사 미스터리, 그 진실은?

하지만 도산 안창호의 음악적 업적을 논할 때 가장 뜨거운 감자는 따로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상징, <애국가>다.

현재 애국가의 작사자는 공식적으로 '미상'으로 분류되어 있다. 1897년 윤치호가 지은 <무궁화가>의 후렴구("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가 애국가와 같다는 점 때문에 윤치호가 작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결정적인 명문화된 증거가 부족해 아직까지도 누구의 작품인지에 대한 치열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역사학자와 연구자들은 '진짜 작사자는 도산 안창호'라는 주장에 강한 무게를 싣고 있다. 왜일까? 애국가의 1절부터 4절까지에는 도산의 핵심 철학인 '무실역행(務實力行)'과 '충의용감(忠義勇敢)'이 소름 돋도록 완벽하게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나라를 사랑하자는 1절의 '무실', '바람 서리 불변하는 철갑을 두른 소나무' 같은 2절의 '용감', '가을 하늘 밝은 달' 같은 3절의 '충의', '괴로우나 즐거우나' 끝까지 힘써 일하자는 4절의 '역행'까지. 이는 도산의 영혼 그 자체다.

그럼에도 왜 그는 끝내 자신의 이름을 명확히 남기지 않았을까? 당시 심각했던 지역적 갈등 속에서 자신의 이름이 오히려 노래가 퍼져나가는 데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한 전략적 선택이자, 이 위대한 노래가 특정 개인의 소유가 아닌 '한민족 전체의 공공 자산'으로 영원히 남기를 바랐던 그의 깊은 포용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애국창가로 도산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위대한 사상가를 넘어, 천재적인 음악적 감각으로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저항의 불씨를 당겼던 도산 안창호. 그의 경이로운 예술적 면모가 오는 3월 15일 일요일 오후 5시, OC 한인상공회의소에서 생생하게 부활한다. 총칼보다 강했던 그의 노랫말이 시대를 뛰어넘어 당신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가슴 벅찬 예술적 경험이 될 것이다.






미래의 주역들이 캔버스에 담아낼 도산의 정신, ‘제4회 도산 안창호 미술대회’ 개최


“도산의 꿈, 우리의 미래(Dosan’s Dream, Our Future)”를 주제로 4월 1일부터 접수 시작


미주 한인 사회의 정신적 지주인 도산 안창호 선생의 고결한 생애와 철학을 차세대들에게 전하기 위한 ‘제4회 도산 안창호 미술대회(The 4th Dosan Ahn Changho Art Contest)’가 오는 2026년 봄, 화려한 막을 올립니다.


지난 대회의 성공을 발판 삼아 더 넓은 화폭으로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대회는 앞서 진행된 제2회와 제3회 대회를 통해 입증된 뜨거운 열기를 이어갑니다. 지난 대회들은 미 전역의 수많은 한인 청소년들이 참여하여 도산의 ‘무실역행’ 정신과 ‘애기애타’의 마음을 현대적인 예술 감각으로 재해석했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는 작품의 수준과 다양해지는 표현 기법은 우리 차세대가 도산의 가르침을 단순히 역사적 사실이 아닌, 삶의 이정표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26년의 주제: ‘도산의 꿈, 우리의 미래’

이번 대회의 주제는 ‘도산의 꿈, 우리의 미래(Dosan’s Dream, Our Future)’입니다. 킨더가든부터 12학년까지의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으며, 참가자들은 도산 선생이 꿈꾸었던 부강하고 평화로운 나라, 그리고 그 꿈이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꽃피우고 있는지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그려내게 됩니다.

대회 일정 및 전시 안내

작품 접수는 4월 1일부터 5월 30일까지 두 달간 진행됩니다. 공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수상자들에게는 상금(1등 300달러, 2등 200달러, 3등 100달러)이 수여되며, 영광의 수상작들은 역사적 의미가 깊은 리버사이드 도산 안창호 기념관(3750 Main St, Riverside, CA 92501)에 전시되어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입니다.

도산 안창호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이들이 도산 선생의 민족 사랑과 희생정신을 마음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우리 커뮤니티의 미래인 청소년들의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도전을 기대한다”고 전했습니다.

대회 참가 신청 및 상세 정보는 포스터 하단의 QR 코드를 스캔하거나 도산 안창호 기념사업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2월의 작은도산 : 김종림 선생 - 독립의 꿈을 하늘로 띄우다: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만든 사람

김종림 (1884~1973)
김종림 (1884~1973)

조국의 하늘을 개척한 캘리포니아의 '백미대왕'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가 선정하는 '이달의 작은도산', 2월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군력을 키워낸 무장 투쟁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캘리포니아의 한인 자산가였던 김종림 선생(1884~1973)입니다.


1. 캘리포니아의 벼농사 신화, '백미대왕'이 되다 1884년에 태어난 김종림 선생은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맨주먹으로 아메리칸드림을 이룩한 초기 이민 사회의 신화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대규모 벼농사에 크게 성공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특히 1917년 기록에 따르면 2,085에이커(약 250만 평)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쌀농사를 지었으며, 당시 한인 사회에서 그는 '쌀의 왕(Rice King)' 혹은 '백미대왕'으로 불렸습니다.


2. 독립의 꿈을 하늘로 띄우다: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 그는 자신이 땀 흘려 이룬 부를 개인의 안락함이 아닌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1920년 3월, 김종림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인 노백린 장군과 뜻을 모아 북가주 윌로우스(Willows) 지역에 한인 최초의 비행사 훈련소인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 학교의 총재 타이틀을 맡은 그는 단지 이름만 올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비로 쌍발 연습용 비행기 2대를 현찰로 구입하고, 비행학교 학생 19명의 훈련 비용 전액을 자신의 지갑을 열어 지원하는 등 무장 투쟁의 재정적 기반을 절대적으로 책임졌습니다. 또한, 임시정부에 단일 금액으로 1천 달러 이상의 거액을 독립 의연금으로 헌납하여 1920년 11월 임시정부 재무부로부터 특별 감사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3. 모든 것을 조국에 바친 헌신과 위대한 유산 비행학교를 통해 독립군 공군력 양성의 부푼 꿈을 키워가던 1920년 11월 초순, 캘리포니아 북부에 닥친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수확을 코앞에 둔 그의 벼농사는 전부 물에 잠기는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 치명적인 자연재해로 인해 그는 파산에 이르렀고 예전의 막대한 부를 다시는 재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국을 되찾겠다는 열망 하나로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쳤던 그의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캘리포니아 하늘로 띄워 올린 두 대의 비행기는 미주 한인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위대한 '투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정리: 2월의 작은도산 김종림 선생]

  • 성공한 한인 1세대 기업가: 가혹한 초기 이민 환경 속에서도 캘리포니아 벼농사로 '백미대왕'이라 불릴 만큼 막대한 부를 일구어낸 개척자입니다.

  • 독립군 공군의 아버지: 조국의 공군력 양성을 위해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세우고 비행기와 훈련비 전액을 지원하며 무장 투쟁의 든든한 재정적 기둥 역할을 했습니다.

  • 조건 없는 희생과 애국심: 자신의 모든 부를 조국 독립이라는 숭고한 꿈에 아낌없이 베팅한 그의 삶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애국 정신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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