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도산 3월호 / 0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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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은 미주 최초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이었다!
한인 노동국(Korean Labor Bureau, 한인취업소)
북미실업주식회사
한인 노동국(Korean Labor Bureau, 한인취업소)
1. 설립 배경 및 기원
한인 노동국의 기원은 190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산 안창호가 회장을 맡아 창립된 '한인친목회(Chinmokhoe)'의 활동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기관은 본래 한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주선하고 최저 임금을 보장해주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리버사이드(Riverside) 지역의 감귤 농장 취업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한인친목회는 이강, 임준기 등으로 구성된 노동 테스트 선발대를 먼저 파견했고, 이들이 훗날 파차파 캠프가 세워질 터를 발견했습니다. 이후 1904년경 안창호 부부가 리버사이드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정착촌 구성을 도왔습니다.
2. 설립 과정과 자금 마련
1900년대 초 리버사이드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로 꼽혔으며, 샌프란시스코나 하와이 등지에서 온 한인들이 감귤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 지역의 농업 노동 시장은 주로 일본인 노동 청부업자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안창호는 일본인 청부업자들과 경쟁하고 한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농장주들과 직접 노동 계약을 협상할 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1905년 한인 노동국을 공식 설립했습니다.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자금은 지역 사업가인 코넬리어스 럼지(Cornelius Rumsey)의 도움을 받아 대출로 마련했습니다.
3. 위치 및 역할
한인 노동국 사무실은 파차파 애비뉴 1532번지(1532 Pachappa Avenue)에 자리 잡았습니다. 노동국은 실질적인 직업 소개소(Job placement agency) 역할을 수행하며 한인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하고 지속적인 고용이 이루어지도록 농장주들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4. 미주 최초의 한인타운 '파차파 캠프' 형성
한인 노동국이 일자리를 공급하자 독신 남성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의 한인 이민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1905년 70명 수준이던 리버사이드의 한인 노동자는 1907년 150명으로 증가했고, 한때는 최대 300명에 달하는 한인들이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노동국 사무실을 중심으로 약 20채의 주택과 커뮤니티 하우스가 들어서면서 형성된 이 집단 거주지는 1908년 샌본(Sanborn) 지도에 '한인 정착촌(Korean Settlement)'으로 기록되었으며, 이는 미국 본토 최초의 한인 타운인 파차파 캠프로 발전했습니다.
5. 민주적 공동체 운영 (도산 공화국)
노동국을 구심점으로 뭉친 파차파 캠프는 단순한 노동자 캠프를 넘어 엄격한 자치 규율을 가진 공동체로 운영되었습니다. 음주, 도박, 아편, 싸움을 금지하는 자치 규정을 세워 위반 시 벌금을 부과했으며, 경찰 및 감찰관 제도를 도입해 스스로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한인들은 고된 노동이 끝난 후에도 커뮤니티 하우스에 모여 예배, 결혼식, 생일잔치, 토론회 등을 열었고, 이러한 협동적이고 자치적인 민주주의 훈련의 장이었기에 이곳은 '도산 공화국(Dosan's Republic)'이라고도 불렸습니다.
6. 캠프 해산
하지만 파차파 캠프는 1913년 감귤 농장에 불어닥친 한파(citrus freeze)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한인 노동자들은 캘리포니아의 다른 농업 지역이나 로스앤젤레스 등 도시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고, 결국 1918년 무렵 캠프는 해산되어 그 자취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북미실업주식회사 (North American Business Corp)
: 1912년 경제 자립을 통해 독립의 기초를 세운 민족 기업
1. 실업(實業)을 통한 구국 비전의 수립
1912년 안창호, 송종익, 김인수 등 미주 지도자들은 경제적 실력이 곧 국권 회복의 토대라는 신념으로 '북미실업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단순한 영리 목적을 넘어, 십시일반 자본을 모아 농업·상업·공업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독립운동의 재정적 보루를 구축하겠다는 원대한 대의를 품고 출범했습니다.
2. 초국가적 자본 결집과 사업의 확장
당초 4만 5천 달러의 자본금을 목표로 시작된 이 회사는 장차 10만 달러를 확보하여 중국에 '한·중 합작 은행'을 세우겠다는 글로벌 경영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18년 도산이 직접 멕시코를 방문해 동포들의 참여를 독려한 결과, 미주 전역과 멕시코를 아우르는 255명의 주주가 참여하는 공적 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3. 농업 경영과 독립운동 지원 활동
회사는 캘리포니아 윌로우스(Willows) 지역의 벼농사에 집중 투자하여 한인들의 경제적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여기서 발생한 수익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채 매수로 이어졌으며, 미주 내에서 일본 상품 배척 운동과 우리 물산 장려 운동을 전개하는 등 경제적 항일 투쟁의 전위 부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4. 예기치 못한 시련과 고결한 마감
1920년 윌로우스 지역의 대홍수와 농산물 가격 폭락은 회사에 치명적인 재정적 타격을 입혔습니다. 또한 상하이 구국모험단의 활동 자금과 관련한 억울한 법적 분쟁에 휘말리며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결국 재정 악화를 이기지 못하고 1929년 11월 해산되었으나, 이역만리에서 주식회사 형태의 민족 자본을 형성하고 경제적 자립 의식을 고취한 그 정신은 한국 기업사의 선구적 발자취로 평가받습니다.

이 문서는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라, 100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이 이국땅에서 '경제적 자립을 통한 독립운동'이라는 원대한 꿈을 어떻게 구체화했는지 보여주는 미주 한인 기업사의 설계도와 같습니다.
주요 내용을 항목별로 분석해 드립니다.
1. 문서의 핵심 내용 (비즈니스 플랜)
우측의 국한문 혼용 텍스트와 하단의 영문 텍스트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파격적인 경영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명칭 및 목적: '북미실업주식회사'라 칭하며, 일차적 목적은 농업으로 명시했습니다.
자본금 목표: 총 자본금 목표액은 45,000달러였습니다. (당시 물가를 고려하면 엄청난 거액입니다.)
주식 가격: 1주(Share)의 가격은 300달러(Gold Coin)이며, 청약 시 증거금으로 10달러를 먼저 납입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비전(은행업 진출): "본 회사에 1만 원(달러) 이상의 자본이 쌓이면 은행업을 시작한다"는 조항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는 도산 선생이 이미 110년 전에 미주 한인 금융권의 필요성을 절감했음을 보여줍니다.
영업 범위: 사무소는 로스앤젤레스(P.O. Box 808)에 두되, 영업 범위는 북미주 어디든 합당한 곳으로 설정하여 확장성을 두었습니다.
2. 발기인 명단 (역사적 인물들)
왼쪽 하단에 나열된 발기인(Founders) 명단은 당시 미주 독립운동의 핵심 브레인들입니다.
안창호(安昌浩): 가장 마지막에 '간번(Secretary/Manager 역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임)' 혹은 핵심 위원으로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송종익, 김종혁, 조성환, 김병규 등: 흥사단과 대한인국민회에서 활동하며 도산의 경제 실력 양성론을 뒷받침했던 인물들입니다.
3. 디자인 및 구성의 특징
상단(한글/한자): 동포들을 위한 상세한 정관 설명입니다. '무실역행' 정신이 깃든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 원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단(영어): "CERTIFICATE FOR STOCKHOLDERS"라는 문구와 함께 미국 법 체계 안에서 공식적인 기업으로 인정받기 위한 영문 서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주류 사회와의 제도적 결합을 시도한 도산의 영리한 전략입니다.
3월 정기 이사회
[회의록]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3월 정기이사회
1. 개회 및 성원 보고
• 성원 보고: 총 이사 77명 중 참석 36명, 위임 10명으로 총 46명이 성원되어 조한희 사무총장이 성원 보고 및 개회를 선포함.
2. 인사말 및 내빈 소개
• 환영사 (데이비드 곽 회장): "도산의 정신 120년을 넘어 미래로"라는 슬로건을 강조하며, 홍명기 회장 서거 이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념관 건립을 위해 헌신해 온 이사진에게 감사를 표함.
• 축사 (이중열 이사/OC 상공회의소 회장): 도산의 4대 정신(무실, 역행, 충의, 용감) 중 특히 '역행(Execution)'을 강조하며, 몸과 시간, 그리고 물질(머니)을 통한 헌신을 독려함.
• 주요 내빈: 폴 박(연세대 경영자 과정 회장), 최현무 소장(동부 LA 한인회), 전창한 지휘자(도산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이 참석함.
3. 신입 이사 및 자문위원 추인 (상세 소개)
이번 이사회에서는 기념사업회의 전문성과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다음의 인사가 새롭게 영입됨:
• 태미 김 (Tammy Kim) 이사: 어바인 부시장이자 세종한국학당 대표로, 미 주류 사회 네트워크 및 차세대 정체성 교육의 중추적 역할 기대.
• 배흥준 (Jay Bae) 이사: 1991년 도산 자서전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으며, 부동산 전문가로서 기념관 부지 관련 실무 지원 예정.
• 임서희 이사: 저명한 방송인 출신으로, 도산의 정신적 가치를 대중에 알리는 홍보 및 기금 마련의 진정성 확보 역할.
• 정기호 이사: 이사회 내 협력과 밀어주는 역할을 자처하며 사업회의 화합을 위해 합류.
• 줄리안 주 (Julian Joo) 이사: 주성 프로덕션 대표로, 지난 갈라쇼 및 뮤지컬 도산의 멀티미디어(LED 스크린 등) 작업을 주도한 전문가.
• 이창엽 자문위원: 전 LA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이자 글렌데일 시 커미셔너로, 정부 지원금 확보 및 행정 절차 자문 수행.
4. 특별 기금 기여 미담 (30년 저금통 기부)
• 기여자: 이철우 · 이은순 부부 (리카온리 인근 햄버거 비즈니스 운영).
• 내용: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30여 년간 정성껏 모아온 동전 저금통을 기념관 건립 기금으로 기부함. 당초 손주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 모으기 시작했으나,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 소식을 듣고 더 큰 뜻을 위해 기부를 결정함. 이는 액수를 떠나 미주 한인 사회의 정성과 역사가 담긴 상징적 기부로 큰 귀감이 됨.
5. 사무국 및 주요 사업 보고
• 월간 도산: 1월 창간호와 2월호 발행 완료.
• 이달의 작은 도산: 1월 이대위 선생(명예 주미 한국대사), 2월 김종림 선생(백미대왕) 선정 보고.
• 교육 사업: 3월 15일 김수현 교수의 '애국창가로 듣는 도산 안창호' 특별 강연 보고.
6. 재무 및 회계 보고 (보고: 안나 김 재무이사)
• 계좌 분리 운영: '건립 기금 계좌'와 '사업회 운영비 계좌'를 엄격히 분리하여 관리 중.
• 건립 기금 현황: 강남구청 도네이션 3회, 개인 및 재단 후원 등을 포함하여 현재 약 10만 달러(9만 7천 불 가량) 적립 중.
• 2025년 주요 행사 결산: 도산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뮤지컬 공연으로 약 19만 4천 불 수익, 지출 후 9,377불의 잔액이 남았음을 보고함.
• 운영 자금: 이사 77명 중 51명(2025년), 38명(2026년 현재)이 회비를 납부하였으며, 사무국 운영을 위한 이사회비 납부 독려가 절실함.
7. 도산 기념관 건립 프로젝트 현황 및 향후 계획
• 부지 전략 변경: 기존 그린벨트 부지(10에이커)의 인허가 및 비용 문제를 고려하여, 허가 절차가 용이한 **리버사이드시 제공 공원 부지(7.5에이커)**로 집중하기로 결정(Phase 1 추진).
• 건립 예산: 전체 1,200만 ~ 1,500만 달러 규모 예상.
• 향후 로드맵: 4월 리버사이드 시장 미팅, 상반기 부지 확정, 8월 국제 건축 공모전 실시, 12월 대대적인 기금 모금 캠페인 런칭 예정.
8. 2026 골프대회 개최 계획 (보고: 김기수 골프위원장)
• 일시 및 장소: 2026년 5월 12일(화), 오크 쿼리 골프클럽(Oak Quarry Golf Club).
• 목적: 부족한 사업회 운영비 마련을 위한,대외 홍보.
• 규모: 총 160명 참여 목표 (참가비 추후 통보).
9. 기타 안건 및 폐회
• MOU 체결: 청소년 무용단 '무화(Bloom in Motion)', '흥사단 미주위원회'와 건립 연대 협약 진행 보고.
• 사회 공헌: 조한희 사무총장이 매주 일요일 오후, 기념사업회 이름으로 각 교회를 방문하여 **'시니어 대상 AI 및 유튜버 특강'**을 재능 기부하기로 함.
• 폐회: 모든 안건 논의 후 곽 회장의 폐회 선언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 후 종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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